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흙과 삶이 남긴 문장, 『흙냄새로 쓰는 편지』 출간(석광환, 영혼의숲)

농촌의 기억과 가족의 시간을 시로 복원하다

장세환2026년 4월 10일 오후 12:3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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흙냄새로 쓰는 편지.jpg출판사 제공

밭을 갈던 손, 저녁 밥상에 남겨진 말, 그리고 오래된 가족의 풍경. 『흙냄새로 쓰는 편지』는 그런 기억을 시로 끌어올린다. 농촌에서의 삶과 가족의 시간을 바탕으로, 한 개인의 생애를 관통해 온 감정들을 정직하게 풀어낸 첫 시집이다.

이 시집의 중심에는 ‘아버지’와 ‘어머니’가 있다.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, 존재의 뿌리를 더듬는 기록에 가깝다. 대표 시 「울 아버지」에서 시인은 이렇게 쓴다.

“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
아버지의 아들로 서성이고 있습니다
… 살아온 삶이 아버지 등에 업혀있었습니다”

부모의 삶 위에서 이어진 자신의 시간을 자각하는 이 문장은, 개인의 성장보다 ‘계승’에 가까운 감각을 드러낸다. 시집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.

또 다른 축은 ‘삶의 노동’이다. 「천수답」에서는 농사의 고단함이 삶의 은유로 이어진다.

“쩍 갈라진 다랑이
하늘 향해 한숨짓는”

메마른 논바닥의 균열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생존의 긴장이다. 시인은 이를 통해 개인의 기억을 넘어, 한 시대 농촌의 삶을 환기한다.

가족 서사는 노년의 시간으로 이어진다. 「노년의 부부」에서는 오래 함께 견뎌온 관계의 감각이 담담하게 드러난다.

“좋은 일 궂은일
부부 연을 버무린 미운 사랑 고운사랑”

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사실을, 이 시집은 반복해서 증명한다.

이 책은 화려한 언어나 실험적 형식보다는, 익숙한 사물과 경험을 통해 감정을 쌓아 올린다. 밥상, 텃밭, 감자꽃 같은 일상의 이미지가 반복되며 하나의 정서를 구축한다.

그 결과 『흙냄새로 쓰는 편지』는 농촌의 기억을 단순한 향수가 아닌 ‘살아온 방식’으로 복원한다. 개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, 어느새 한 세대의 시간이 겹쳐 보이는 구조다.

흙을 만지며 살아온 시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, 이 시집은 조용히 보여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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