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규칙을 뒤흔드는 어린이의 언어, 『라면에 귤 넣어도 돼요?』 (정희지, 창비)

자유로운 상상과 경청으로 확장하는 어린이의 세계

장세환2026년 4월 17일 오후 1:2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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라면에 귤 넣어도 돼요.jpg출판사 제공

“라면에 귤을 넣어도 될까.” 엉뚱한 질문 하나가 어른의 질서를 흔든다. 정희지 시인의 첫 동시집 『라면에 귤 넣어도 돼요?』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해, 어린이가 세상을 새롭게 부르는 방식을 펼쳐 보인다.

제15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시인의 이번 작품은 총 53편의 동시를 통해 어린이의 시선과 언어를 생생하게 담아냈다. 어른이 정해 놓은 규칙에 머무르지 않고, 스스로 이름을 붙이고 관계를 다시 구성하는 어린이의 주체적인 목소리가 특징이다.

시집 속 화자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. 가족의 이름을 새롭게 바꾸고, 일상의 장면에 자신만의 의미를 덧붙이며, 기존의 질서를 가볍게 비튼다. 특히 아빠의 라면에 귤을 넣고 “이제 내 목소리 들려요?”라고 묻는 장면은, 무심한 어른 세계에 균열을 내는 유쾌한 저항으로 읽힌다.

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단순한 발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. 시 속 어린이는 자연과 사물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며, 보이지 않던 감정을 길어 올린다. 수조 속 생물의 고독을 바라보고, 달팽이의 삶을 헤아리는 과정은 ‘경청’이라는 태도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.

나아가 이 시선은 타인과의 관계로 확장된다. 친구의 마음을 살피고, 주변의 존재와 나란히 서려는 움직임 속에서 어린이는 점차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다.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데서 출발해, 타인의 슬픔과 기쁨까지 함께 품어내는 성장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.

정희지의 동시는 어렵지 않다. 대신 익숙한 장면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. 그리고 그 낯섦은 결국 독자 자신의 언어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. 우리가 너무 쉽게 지나쳤던 말과 감정들이, 이 시집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.

아이의 질문은 가볍지만, 그 질문이 향하는 세계는 결코 작지 않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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