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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의 작은 사물들이 건네는 반 뼘의 용기 『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』 신간 (김근희, 이지출판)

사소한 경험 속에서 삶의 감정과 태도를 길어 올린 첫 수필집

장세환2026년 4월 24일 오후 4:4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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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이힐은 반뼘의 마법이다.jpg출판사 제공

하이힐 한 켤레, 머리카락 몇 가닥, 출근길의 사소한 풍경. 『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』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장면들에서 삶의 결을 길어 올리는 수필집이다. 김근희 작가의 첫 수필집인 이 책은, 크고 극적인 사건 대신 평범한 경험이 어떻게 마음의 균형과 태도를 바꿀 수 있는지를 차분한 문장으로 보여준다.

이 책에는 모두 40편의 수필이 실려 있다. 작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과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. 하이힐, 머리 자르기, 커피 한 잔, 놀이터의 풍경 같은 소재들을 곰곰이 바라보고, 그 안에 스며든 감정과 문화적 맥락을 조용히 풀어낸다. 글은 과장되지 않으며,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도 않는다. 대신 경험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,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하도록 이끈다.

표제작 「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」는 이 책의 정조를 가장 잘 보여준다. 작가는 하이힐을 단순한 패션 아이템으로 다루지 않는다. 어린 시절의 동경에서 시작해 직장 생활의 ‘전투화’,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는 도구까지, 하이힐은 여성의 삶을 관통한 상징으로 확장된다. 반 뼘 높이의 굽은 물리적으로는 작지만, 시야와 마음을 동시에 들어 올리는 장치가 된다.

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하이힐을 무조건적인 환상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. 부주의로 다친 발, 편한 신발을 신으라는 의사의 당부, 자신감이 잠시 내려앉는 시간까지 솔직하게 담긴다.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하이힐을 신어보는 순간, 그것은 작별이 아니라 ‘안부 인사’가 된다. 이 과정은 삶의 어떤 상실과 회복을 은유처럼 보여준다.

또 다른 수필 「여자가 머리를 자를 때」는 머리카락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여성의 내적 변화와 결단을 풀어낸다. 작가는 ‘머리를 자른다’는 말 속에 담긴 문화적 배경과 감정의 무게를 짚으며,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위가 때로는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려는 의식처럼 작동한다는 점을 포착한다. 변화는 거창하지 않지만, 그 결심은 가볍지 않다.

이 책에 담긴 수필들은 대체로 말소리가 크지 않다. 일상의 기쁨과 불편, 사소한 오해와 온기를 다룰 뿐이다. 하지만 그 태도는 일관되게 진중하다. 김근희 작가는 글을 쓰기 전 손을 씻고, 핸드크림도 바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손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. 독자를 향한 예의이자, 문장을 가볍게 다루지 않겠다는 다짐이다. 그런 태도는 문장 곳곳에서 드러난다.

『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』는 삶을 긍정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. 대신 삶이 이미 지니고 있는 미세한 마법을 알아차리게 한다. 반 뼘 높이의 굽처럼, 아주 작은 변화가 시야를 바꾸고 마음의 여유를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건넨다.

이 수필집은 특별한 삶을 다루지 않는다. 외국계 기업에서의 직장 생활,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, 출근길의 풍경처럼 많은 독자에게 익숙한 장면이 반복된다. 그러나 익숙함 속에서 언뜻 보이지 않던 감정의 결이 드러난다.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하이힐, 자신의 머리카락, 자신의 출근길을 떠올리게 된다.

『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』는 첫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 깊다. 화려한 데뷔보다 삶과 문장을 오래 응시한 흔적이 먼저 보인다. 일상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독자, 사소한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는 글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조용하지만 선명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.

이 책이 말하는 ‘마법’은 환상이 아니라 감각에 가깝다. 조금 더 천천히 보고,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할 때 비로소 드러나는 반 뼘의 변화. 『하이힐은 반 뼘의 마법이다』는 그 작고도 확실한 차이를 기억하게 만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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